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한 이들에게, 조 블랙의 사랑
리뷰를 작성하는 것에 있어 가장 큰 고민은 무슨 작품을 고르느냐다. 드라마, 책, 애니메이션은 감상에만 하루 이틀이 통째로 날아가기에 영화를 선호하는데, 영화는 이상하게 액션 영화만 보고 싶다. 그래서 다른 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데, 여자친구가 문득 이 영화를 리뷰해달라고 요청했다.
감상 전에 영화에 대한 검색은 필수다. 어떤 내용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상영시간이다. 상영시간 세 시간짜리 옛날 영화는 좀 버거운데…
그렇지만 요청받았으니 일단 써본다.
영화에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은 네 명이다.
성공한 사업가 “윌리엄”,
윌리엄의 둘째 딸 “수잔”,
수잔이 커피숍에서 사랑에 빠진 이름 모를 남자(이하 “커피남”),
커피남의 몸을 빌린 저승사자 “조 블랙”
영화는 이 네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과 메시지를 전한다. 그럼 그들의 이야기들을 간략하게나마 요약해보자.
1. 65세 생일을 맞이한 윌리엄은 수잔이 걱정스럽다.
자기 직원과 감흥 없는 사랑을 하는 수잔을 조심히 타이른다.
“사실 인생은 사랑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단다.”
윌리엄의 걱정 덕분일까, 수잔은 커피숍에서 커피남과 사랑에 빠지지만,
커피남은 차에 치여 죽고 저승사자가 커피남의 몸을 빌려 윌리엄에게 찾아간다.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으니 소개해라, 그 대가로 당신을 좀 더 살려주겠다.”
윌리엄은 사람들이 놀랄까 두려워 그의 정체를 숨기고, 조 블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2. 윌리엄은 자기가 만든 회사의 합병을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는 이사회에서 합병을 거절한다.
“인간은 뭔가 남기고 싶어 해. 자기가 만든 모습 그대로 말이야.”
그러나 윌리엄은 함정에 빠져 대표 자리에서 쫓겨나고 회사는 강제 합병될 위기에 처한다.
한편 조 블랙과 수잔은 사랑에 빠진다. 조 블랙은 수잔을 너무 사랑하기에 윌리엄과 함께 데려가려 하지만, 윌리엄이 조 블랙에게 말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 목적 없는 열병이지. 중요한 건 다 빠졌어.”
3. 65세 윌리엄의 생일 파티 날, 조 블랙은 그녀의 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수잔의 사랑은 조 블랙이 아닌 조 블랙이 몸을 빌리고 있는 커피남이었음을 깨닫고 그녀에게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난다.
“커피숍에서의 추억은 언제까지나 간직할 수 있을 거요.”
수잔을 떠나온 조 블랙은 재치를 발휘해 윌리엄의 회사가 합병되는 것을 무산시키고 윌리엄만을 데리고 떠난다.
그리고 수잔이 사랑했던 커피숍 남자를 환생시켜 그녀에게로 보내준다.
영화는 세 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죽음을 앞둔 윌리엄의 일과 가족에 대한 사랑과 수잔의 부모와 연인에 대한 사랑과 조 블랙의 수잔을 향한 사랑은 계속해서 얽히다 하나의 그물이 된다.
그들이 만들어낸 그물은 무엇을 낚아내기 위함이었을까.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한 가지를 먼저 말하고자 한다. 모든 영화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현실에 문제 제기도 할 수 있다. 하나의 재료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오늘 나의 레시피는 별다른 조리와 가미를 하지 않는다. 영화 그 본연의 맛이 잘 배어있는 원론적 메시지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영화 제목 “조 블랙의 사랑”처럼 나는 여자친구를 사랑하고 있고, 그 여자가 내게 이 영화를 리뷰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다양한 속성이 있다. 이게 사랑이야, 라고 말하기에는 언어는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 한다.
사랑을 완벽하게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사랑의 모든 속성을 열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리만가설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지만, 사람들은 착각한다. 코끼리를 설명하는 맹인처럼, 부분을 놓고 전체를 논한다. 꼬리를 만져놓고서는 밧줄이라고 하고, 몸통을 만져놓고선 벽이라고 한다. 코끼리는 그저 코끼리일 뿐인데 말이다.
영화 내내 윌리엄은 수잔과 조 블랙에게 사랑의 속성에 대해 열변한다. 열정, 집착, 두근거림, 그 사람 없이 못 사는 것, 믿음, 책임, 선택과 감정을 중시하고, 기대에 부응하며 여생을 보내고,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는 것 등등 이외에도 많다.
그러나 영화 제목은 “윌리엄의 사랑”이 아닌 “조 블랙의 사랑”이다. 그는 수잔을 사랑했지만, 그녀를 데려가지 않았고 오히려 커피남을 환생시켜 그녀에게 보내주었다. 백 마디 말보다 가슴 아픈 선택 하나로 보여준 셈이다.
사랑은 나가 아닌 너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걸 말이다.
그렇다고 윌리엄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윌리엄의 가치가 수잔과 조 블랙에게 전달되어 발현됐음을 잊으면 안 된다.
윌리엄과 조 블랙의 뒷모습이 사라진 뒤에 나타난 커피남은 인류 존속을 위한 사랑의 가치 대물림과 이타심이 만들어낸 새로운 사랑임을, “도야지의 사랑”은 강조하고 싶다.
만약 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 심장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면, 그래서 ‘사랑이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 영화의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