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곳에 갈 이유가 생겼다, 여수 명동 게장
철새는 계절에 따라 이동한다.
추운 계절이 오면 남쪽 나라로 떠나가고 계절이 지나면 다시금 돌아온다.
V자 대형으로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장관이 매년 펼쳐지는 걸 볼 때면,
자연의 위대함에 놀라 감탄하게 된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대이동은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매년 찾아오는 설, 추석 같은 명절이면,
귀향길 인파로 거리는 마비 직전까지 내몰린다.
이렇듯 습성과 문화는 불편과 고생을 기꺼이 감수하게 한다.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게장을 좋아하는가?
고개를 끄덕였다면, 여수 명동 게장은 당신에게 새로운 계절과 명절이 될 수 있다.
여수 여행에서 들른 두 번째 맛집, 명동 게장이다.
친구가 네이버 리뷰가 많다고 추천해서 갔더니, 장사가 잘되는지 본관과 별관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갔을 때 본관은 공사 중이었다.
그래서 사잇길을 따라 별관으로 이동~
별관은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단체 전용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건 것처럼 실내는 상당히 넓었다.
그러나 1층에서 게를 손질하는지 계단을 오를 때 안 좋은 냄새가 확 올라왔다.
(나는 비린내를 극도로 싫어한다. 근데 낚시는 좋음 ㅋ)
메뉴는 '음 조금 비싼데?'라는 생각이 드는 가격이었다.
화장실에 갔다 오니 친구가 주문을 마친 상태라 30,000원짜리를 먹었지,
만약 내가 주문했다면 14,000원짜리를 먹었을 거다.
가격은 좀 더 저렴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친가가 전라도, 외가가 경기도고 훈련소마저 광주였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그만큼 전라도 식당은 자주 다녔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밑반찬은 전라도 식당 평균 이하다.
그러나 게장은 얘기가 다르다.
앞서 말했듯 나는 비린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데, 비린 맛이 하나도 없다.
간장게장은 달고 짠 정도가 적당해서 밥 도둑이란 말에 손색이 없다.
양념게장 또한 밥도둑 2호로 밥 두 그릇을 싹싹 비우게 만든 장본이었다.
게살을 밥에 넣고 비벼 먹거나, 게딱지에 밥을 넣어 먹거나, 김을 부셔서 넣기도 하고, 김으로 싸 먹기도 하고,
여러 방식으로 먹었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다. 뭘 어떻게 먹어도 그냥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꼬막, 생새우, 딱새우, 문어, 전복, 달걀, 갓김치가 함께 나오기는 하는데, 그냥 곁가지일 뿐이다.
오직 게장, 온리 게장이다.
진짜 반찬 하나만으로 밥을 이리 맛있게 먹을 수 없다.
그러니 집에 당연히 사 가야겠지?
친구가 계산하는 동안 우리가 먹었던 6만 원짜리 실속암꽃게장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으로 먹으려고 하니,
이럴 수가, 하루 이틀 숙성시키라는 안내가 있었다. (좌절)
잠시 망설이다가 에이 하루 숙성 안 시킨다고 뭐 달라지겠어? 하고 먹기로 했다.
상당히 실한 게의 모습을 보며, 입맛을 쩍쩍 다시다가 급 빡쳤다.
게장을 통에다 담아줬는데, 간장 샌 거 실화냐 ㄷㄷ;
간장게장은 양념간장도 밥도둑인데 ㅠㅠ
뒷정리를 마치고 게장을 그릇에 담으니 아주 먹음직스러웠다.
아 또다시 행복해질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하나 집어 들었는데
음… 점심때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솔직히 조금 비렸다.
게딱지는 차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비렸다.
그래서일까. 잔뜩 실망한 게장 탓으로,
맛있는 간장게장은 내게 다시 그곳에 갈 이유로 남았다.
PS. 매장에서 게장을 먹을 시 꽃게장을 다 먹으면 돌게장으로 리필을 해줍니다. 그러나 간장 돌게장은 제 입에 비렸습니다. 다만 양념 돌게장은 먹을만 했습니다.